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페인 제2공화국 (문단 편집) === [[스페인 내전]] === 이러한 정책에 이를 갈던 좌파 세력들은 '[[인민 전선]]'이라는 이름으로 1936년 총선에서 대단결을 이룬다. 원래 이 당시 스페인 좌파들은 [[아나키즘]], [[공산주의]], [[사회주의]]([[민주사회주의]]), [[공화주의]]([[급진적 자유주의]]) 등으로 분열되어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고 특히 좌파 중 가장 비중이 컸던 아나키즘 노동조합 [[CNT]]의 경우 아나키스트답게 선거 불참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좌파 정권 창출이 힘들었다. 그러나 중도우파 정권 3년 동안 안달루시아 일대의 아나키즘 소작농 공동체들이 지주들에게 크게 두들겨 맞고 이것에 반발해 들고 일으킨 아스투리아스 반란도 작살을 내면서 다른 정파들과 타협하지 않고 독불장군식으로는 우파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인식이 CNT 내에 퍼지면서 결국 처음으로 선거에 참여하기로 결정해서 아나키스트까지도 총괄한 좌파 연립 정권인 인민전선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에 반대로 CEDA를 중심으로 한 우파세력도 반혁명국민전선을 결성했지만 공화주의 우파들의 미적지근한 반응과 파시스트([[팔랑헤]])의 반대로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통념과는 다르게 공화주의 우파 정권(1933~1936)에서 CEDA와 정부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좌파에 반대하는 것에만 의견이 일치했지 가톨릭 교회에 대한 견해, 공화정 국체에 대한 찬반여부 등 다른 대부분 요소에서는 의견이 많이 갈렸다. 따라서 공화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이 공화정이라는 국체에 공감하면서 비교적 쉽게 단결할 수 있던 것에 비해서 공화주의 우파와 보수주의자들은 공화정이냐 왕정이냐를 놓고 끝까지 갈등을 벌였다.] 그리고 이 단결이 결실을 이루어 인민전선은 집권을 이루어낸다. 인민전선 내각은 정치범 석방, 농민 보호(토지 개혁, 조세 개혁, 지대 인하 등), 노동자 권리 증진(임금 인상, 노조 설립 등)과 같은 정책을 다시 펼치면서 개혁에 시동을 건다. 하지만 인민전선에서도 공화주의 좌파같은 온건파들만으로 내각이 구성되었고 라르고 카바예로 같은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은 정권에 참여를 거부하는 등 선거 후에는 연합이 순탄하지 않았다. 라르고 카바예로는 자신이 이끌던 PSOE 좌파의 입각을 막을 뿐만 아니라 프리에토 계열인 PSOE 우파의 입각도 방해했다. 하지만 가톨릭/지주/군부가 주축이 된 극우 세력들은 중도좌파 정부의 정책을 방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노조를 향한 [[백색테러]]가 난무했고 군부에서는 공공연하게 쿠데타 음모가 튀어 나왔으며 지주와 가톨릭 교회는 정부의 개혁에 대놓고 '배째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스페인 혁신의 칼보 소텔로와 팔랑헤의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는 공공연히 애국세력들의 쿠데타를 외쳤다. 이런 상황에서 왕당파(RE: 에스파냐 혁신) 지도자였던 호세 칼보 소텔로를 공화국이 새로 창설한 [[헌병군]] 조직이었던 돌격 경찰대(Guardia de asalto) 대원들이 암살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구실로[* 구실인 이유는 이 암살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산후르호, 몰라, 프랑코, CEDA 당수 힐 로블레스, 팔랑헤를 중심으로 쿠데타 계획을 36년 총선 때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암살 한참 전부터 카를로스파 민병대인 레케테는 나바라에서 비밀리에 훈련을 하고 있었고, 외국산 무기는 이미 밀반입되고 있었다.] 1936년 7월 17일 군부가 대대적으로 대반란을 일으켜 마침내 [[스페인 내전]]이 터졌다. 반란군에 가담한 인물 중에는 나중에 스페인의 독재자 자리에 오르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역시 있었는데 인민전선 정부는 프랑코가 반란군에 가담한 것에 대해 크게 놀랐다. 본래 인민전선 정부 역시 군부의 쿠데타를 우려해 쿠데타를 일으킬 것 같은 성향의 장군들을 모두 오지로 좌천시켜버렸다. 이때만 해도 프랑코는 호세 산후르호, 마누엘 고데드, 호세 안토니오 데 리베라 등과 같이 공공연하게 극우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스페인 군부 내에서 그나마 정치적인 발언을 안 하고 자기 하는 일만 묵묵히 하였으며,[* 이 덕분에 프랑코는 국민전선을 구성하던 여러 파벌들 눈에 지도자로 가장 적절한 인물로 비춰졌으며, 여기에 프랑코의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었던 호세 산후르호와 에밀리오 몰라가 항공기 사고로 죽는 행운까지 겹치고 프랑코가 본인의 정치력으로 국민전선 내 반대파들을 모조리 숙청하면서 프랑코는 확고부동한 국민전선의 지도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쿠데타 직전 흉흉한 군부의 분위기에 대해 지금 당장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필요하다면 자신도 도울 것이라며 정부에 밀서를 보낼 정도였기에 그런 프랑코가 반란군에 가담한 소식을 듣고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인민전선 정부는 [[소련]]과 [[국제여단]]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버텼으나 서방 국가들의 외면과 고질적인 내분,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 등 파시즘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반란군에게 열세에 몰렸고, 3년의 걸친 피비린내나는 내전 끝에 결국 1939년 프랑코에게 항복, 제2공화국은 패망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